믿음의 기상(氣像)을 드립시다.
☞본문 말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찬송가: 109(고요한 밤 거룩한 밤)·111(귀중한 보배합을)장
흔히 ‘고독’, ‘외로움’ 하면 홀로 있을 때만 느끼는 거라 여기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군중 속의 고독’입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외로운 무리’란 말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느닷없이 ‘고독, ’외로움‘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때, 그 시절 그들이 그런 외로움을 이겨내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역사적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들은 셋으로 알고 있으나 정확한 인명 수는 모릅니다. 하여간 메시야의 별을 보고 가다가 그 별이 멈춘 곳에서 아기 예수님을 뵈러 문을 열었을 때, 헤롯 왕의 일행은커녕 유대 백성 가운데 그 누구도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서너 명 정도의 외로운 무리였던 그 동방박사들만이 아기 예수님과 그 일가족을 만나는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초림을 돌아보며 한 가지 예언을 저 나름대로 남긴다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 성도들이 그와 같은 외로움도 견디며 이겨내고 믿음의 길을 완주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길고 긴 터널 같은 팬더믹 상황을 지나치며 한국교회만 해도 이미 일만여 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으며 코로나가 지나간다 해도 교인들 가운데 20%는 다시 교회 출석을 안 할 거라는 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게다가 성탄절인 이때 잘 배운 교인들 가운데는 성탄절이 12월 아닌 5월 중순이어야 한다면 12월의 크리스마스를 반기지 아니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황금처럼 한결같은 믿음의 기상을 드립시다! 누가 뭐라 하든지 우리가 가는 길에 돌을 던지든지 말든지 믿음의 기상으로 올곧이 신앙의 길을 완주합시다. 만약 5월 15일쯤으로 옮겨 성탄절을 지킨다면 그 일이 구원의 완성이 될까요? 만약 그런 행위 율법으로 우리의 구원이 온전해진다면 벌써 주님이 그렇게 하도록 역사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주님은 시간과 공간도 지배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시간 개념에는 시시때때로 어떤 사건들의 순차적 나열이 필요로 하나 우리의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 즉 모든 일이 현재 진행형이신 분이십니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지혜가 부족하고 믿음도 부족하고 그 외에 많은 것이 부족함에도 주님을 생각하며 무엇을 한다고 하니 묵인의 은혜로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분명히 이 땅에 오셨음을 시인하는 마음을 받으셨고, 이러한 시즌에 모여 드리는 찬양을 받으셨고, 그 모임 가운데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받으시며 어느덧 2천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 하여도 지금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사실을 믿음으로 시인하며 기쁨으로 찬양과 예배를 드리고 그 즐거움을 이웃과 사랑으로 나눔이 마땅한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연말연시를 보내며 우리의 믿음의 기상을 드립시다. 그 심령 위에 주님은 분명히 오늘도 크신 은혜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찬양과 예배를 받아 주시고, 오늘도 구원의 크신 은혜를 이 땅에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