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 인간에게 밤중에 노래하게 하십니다.
욥기 35장 10절~11절에 보면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
여기서 밤중이란 고난의 밤을 상징합니다.
상징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가정에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고, 예배를 마음대로 못 드리게 되었습니다. 등등 이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와 같은 밤을 두려워합니다. 아니 그러한 밤들이 싫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난의 밤을 겪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만일 우리 인생에 밤이 없고 화창한 날만 있다면, 인간은 말할 수 없는 자기 의와 교만함과 완악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은 인물치고, 인생의 밤중을 통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밤중에 부르는 노래는, 낮에 부르는 노래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은 기쁘고 은혜롭지만, 밤에 부르는 찬송 즉 고난을 당할 때 부르는 노래는 슬프고 외롭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집니다. 예컨대 몸도 마음도 병들어 살 소망이 없을 때 부르는 노래는, 영육이 건강할 때 부르는 노래나 찬송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던 밤에, 그 일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면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애통하듯 기도하셨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대속(對贖)의 죽으심은 예정된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써 친히 짊어지신 사랑의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밤중의 노래 곧 "영혼의 노래"를, 즐겨 받으시는 때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욥기 3장 1절부터 26절은, '욥의 탄식'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24절과 25절에서 탄식과 탄식의 이유를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라고 한 말씀에서 본문이 탄식의 일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25절 후반부에서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탄식함으로, 당시 욥이 당한 고난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정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니, 가히 그 신앙의 정신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할 만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도 욥 같은 고난은 아닐지라도, ‘밤중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하박국 3:17~19)
하박국 선지자는 처절한 밤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8)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박국 3:19)
아멘 할렐루야!!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한복음 11:40)
날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승리하고, 보람 있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