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태 2:2~3절)
제목: 먼저 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메리 크리스마스~!
찬송: 108장(그 어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이러니한 장면들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그 몇 가지를 말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인의 왕을 이방인이 찾았다는 점과 왕을 맞이하기 위한 일사불란함 보다는 소란스러움이 느껴진다는 점 그리고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세 명의 이방인만이 알현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이 땅의 사람들이 주님의 오심에 대해 얼마나 반감이 컸고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예수께서 오신지 이천 번 하고도 스물세 번째를 맞이했다고 하는 지금은 좀 더 나은 모습이 있을까요? 우선, 성탄절이 5월이 맞는데 12월에 있다는 둥 하면서 성탄절 시기에 대한 시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구원 생일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지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은 뒤로한 채 엉뚱한 것으로 시비를 삼고는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그 정확한 때에 절기 지킴의 율법이 중요했다면 벌써 성경에서 분명하게 일렀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탄절의 주인공이 어느새 산타 할아버지 또는 상업적 빅 이벤트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은 재물을 주고받으며 돈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주객이 전도된 성탄절 아닌 성탄절을 보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매번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더더욱 안타까운 점은 동성애와 낙태 반대를 외치는 목회자와 교회는 고리타분하게 여기며 기득권이 강한 목회자와 교회로 낙인찍혀 가고 있는 사회의 흐름입니다. 세상의 이러한 흐름 가운데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비례해 성도들은 무리를 이루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외로운 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옛날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선 동방 박사가 셋이라는 무리를 이뤄 어렵게 유대 땅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그 세 명만이 주님을 뵈옵는 영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이 땅의 성도가 외로운 무리인 것은 거의 숙명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그러하여도 성도라면 이 세상에서 외로운 무리이기를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영적 자세로 이 글을 읽는 성도 여러분, 올해 성탄절도 주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여물통 안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사회의 소외받는 자들을 돌아보는 은혜로운 성탄절이 되어 지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