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든지 교회 주보든지 인쇄물에 자기 이름이 들어갔으면 굉장히 소중이 여깁니다. 혹 이름이 틀리게 인쇄되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주보에 자기 이름이 틀렸거나 누락되면 시험에 들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기억해주고 불어주면 굉장히 좋아하지만 이름을 잊어버리면 섭섭해합니다. 혹시 어린 사람이 자기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불쾌해하고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장난치면 분노합니다.
어떤 사람은 관광지에 가서 자기 이름을 남기고 옵니다. 그래서 관광지의 나무나 바위는 낙서에 몸살을 앓고 심지어는 문화재가 훼손되기도 합니다. 남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줄도 모르고 이름을 새기고 오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도 있습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외국 관광지에 갔는데 한글도 된 낙서를 발견했을 때입니다. 거기에 한글 석 자가 적힌 것은 분명히 이름이겠죠.
어떤 건물이나 조각품 앞에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은 매우 명예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종종 나무를 심고 나무에 사람의 명찰을 붙여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나무가 잘 자라도록 정성을 들입니다. 그럴 때 그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닌 자기의 분신이 되는 것이죠.
건물을 지을 때 건축가의 이름이나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건축비를 낸 사람의 이름을 따서 ‘OOOHall’ 또는 ‘OOO기념관’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건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기부금 낸 사람을 추억하기 보다는 단순히 건물 이름으로 부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보면 건물에 붙은 이름은 그 이름의 주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어떤 교회에 갔더니 교회 로비 옆의 벽돌에 한 장에 한명씩 사람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농담으로 저분이 저 벽들을 기증했나보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예배당 건축에 일정 금액 이상의 헌금을 드린 분들의 이름을 새겨드린 것이겠죠. 아마 거기에 이름이 새겨진 분들은 예배당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고 자부심이 느껴지며 그 교회와 그 예배당을 남달리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당 벽돌에 이름 석 자를 새겨놓아도 그렇게 기분이 좋고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면 예배당 기둥 하나에 한 사람씩 크게 이름을 새겨놓고 이 기둥은 누구의 기둥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이 생길까요?
수원과 동탄 사이에는 ‘박지성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탄 시민들이 항의하여 지금은 ‘동탄지성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수원출신인 박지성 선수의 이름을 높여 주려고 도로에 그 이름을 붙여 준 것입니다. 그 도로를 건설할 당시에 경기도지사였던 손학규씨의 말처럼 원래 도로에는 왕이나 위인의 이름을 붙여 주는데 젊은 청년의 이름을 붙여 준 것은 아주 대단한 일입니다.
자, 그런데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 성전 기둥에 내 이름을 새겨주고 그 기둥은 내 기둥이라고 한다면 그 자부심과 자랑과 영광스러움은 얼마나 대단할까요? 천국에 영원히 살면서 그 기쁨이 얼마나 클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둥에 이름을 새겨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천국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 많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주 예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는 사람에게 이런 영광을 주십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라고 표현된 것이 실제로는 성전 건물의 대리석 기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이 묘사한 천국은 다분히 물질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이해의 한계점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누런 황금을 천국의 도로에 깔아 놓아도 찬란하겠지만 진짜 천국은 그보다 훨씬 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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