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찬송: 460장(뜻 없이 무릎 꿇는)
핵에 대해 북한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이 있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이란입니다. 그런데 이란은 요즘 핵도 아닌 그렇다고 반미도 아닌 여자의 복장 문제 하나로 세계의 핫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 복장 문제는 바로 히잡입니다.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아니한 어느 젊은 여성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의문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이란의 젊은 여성과 대학생, 노동자 등 여러 계층의 국민들이 합세하여 번져 나가던 시위는 급기야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정일치의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이러한 시위와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제사회까지 가세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을 계기로 이란 사회가 여성 인권과 핵에 대한 진전된 자세를 갖고 국제사회로 나오는 좋은 기회가 되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히잡에 대한 견해입니다. 고전 11:6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결국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히잡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 신학자들이나 신앙자들 가운데 이 부분을 그리 중요치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면 히잡이 믿음 생활의 원리가 아니라 그 당시 생활기준에서는 지키는 게 미덕인 생활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성도들이 외적 문제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는 바울 선생의 생각이 깃든 구절로 유연하게 해석하고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바로 진리에서 오는 자유를 알고 잘 분별하여 선택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잠시 상상해보기 바랍니다. 본질보다는 시대에 따른 삶의 양식이 달라지든지 말든지 여성도들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교회, 그런 눈에 보이는 외향적인 문제에서부터 무언가 남녀의 차이를 두고자 하는 교회이기를 계속 고집했다면 지금의 교회는 어떠했을까요?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사회와 그런 자유주의를 더욱 지향하는 21세기에 모순은 없었을까요? 어쩌면 지금 들불처럼 일고 있는 히잡 시위운동에 때를 맞춰 이란의 정부와 함께 교회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천절을 맞이하여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역사를 뒤돌아봅니다. 수많은 굴곡진 아픔이 있었고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남들도 부러워하는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만큼이나 아직도 할 일 많은 우리나라에서 진리로부터 오는 자유를 더욱 지향하고 주님 앞에서 옳은 선택을 하며 통일의 꿈을 선도해 나가는 한국교회가 되어지기를 기도하며 기대하는 바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진리로부터 오는 자유의 빛을 사모하며 힘써 전파하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이 되개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