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하며 즉석토론 요청하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사교과서 연구소 소장 김병환)
*아래 기사는 기자회견 내용이다. 회견 내용을 거의 그대로 정리하였다. 2회에 걸쳐 기사를 게제한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사교과서 연구소 소장 김병환)은 지난 9월30일 수원가족여성회관앞에서 “위안부 사기 중단 촉구 1인 기자회견”을 열고 [안00 기억의 방 철거촉구] 1인 시위를 하였다.
김소장은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거짓말 천국이라며, 개항 이후로 한일 관계사를 교과서가 온통 거짓말로 왜곡, 날조하여 가르치고 있다고 하며, 오늘날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위안부 문제는 그야말로 노이즈를 이용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세계를 속인 국제 사기극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위안부들은 기본적으로 가난의 피해자들로서 누가 강제로 끌고 가거나 납치하거나 유기할 수 없는데 당시 조선이고, 일제 식민지라 하더라도 법치가 작동된 나라로서 아무나 끌고 가서 매춘도 시키고 끌고 가서 식당에 일 시키고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며, 만약에 그렇게 부모도 이웃도 모르게 여자를 끌고 가서 그런 험악한 일을 시켰다면 부모들이 이웃들이 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수원시에서 사랑하고 있는 ‘영감 안00 기억의 방’이라고 말하며, 안정순은 일본군 위안부도 위안부 피해자도 아닌 이유가 위안부라고 해서 다 같은 위안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안부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그냥 위안부로서 1966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위안부는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소정의 대가를 받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인을 위안부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위안부서는 일본에서도 있었고 조선에서도 있었고 온 세계에 다 있었으며, 그 중에 주둔지의 위안부도 있었다. 그다음에 일본군 위안부로 일본군이 관리 감독하는 위안소에서 일한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서 일본군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감시가 아니라 행정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한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냥 위안부고 그냥 일반 매춘업소에서 일한 여성인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일본에서 주둔지에서 많은 여성들이 일반 매춘업소에서 일했으며, 그들이 원했건 안했건 당시 조선 땅에서 힘없는 나라, 가난한 나라 특히 가난한 부모에 의해서 입이라도 하나 줄이기 위해서 험악한 길로 나선 것이며 물론 본인이 원에서 왔을 수도 있지만 다수의 여인들은 부모들이 팔았고 부모들이 인사 소개업자에게 얼마씩을 받고 넘겼는데 그렇다고 해서그 돈이 몸값이 아니고, 흔히 말하는 “전차금”이라고 해서 미리 빌리는 돈이며,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 동안 일할 대가를 미리 지불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빚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또한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와 서류가 있어야 되며, 일본군 위안소는 중일전쟁 지역과 태평양 전쟁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중일 전쟁 지역인 중국과 태평양 전쟁 지역인 동남아 지역에 일반 매춘업소가 없는 곳을 위주로 일반 매춘업소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위주로 일본군 위안소가 설치되었다고 했다.
김소장은 말하기를, 그렇다면 중일 전쟁 지역과 태평양 전쟁 지역이 아닌 일본, 조선, 대만,
만주에는 일본군 위안소가 없었는데 이것은 동북아 역사재단의 “위안부 역사 지도”에도 분명히 나와 있는데 조선과 일본, 대만, 만주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건 거짓말이며, 그들은 전부 다 일반 매춘업소에서 일한 여성들이라고 했다.
또한 이00씨가 대만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대만에는 일본군 위안부가 없었고, 이00씨는 1992년과 1993년도에 증언에서 “어떤 남자가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를 건네줘서 거기에 홀려서 자신도 모르게 선뜻 따라나섰다”고 이야기했는데 1993년도 정대협에서 발간한 증언집에 그렇게 돼 있다고 말하며, 이00는 그 증언집에서 “대구에서 대만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남자는 위안소 주인이었다. 우리는 그를 오야지라고 불렀다.”라고 분명하게 증언을 해놓았는데 무슨 일본군이며. 일본군이 중일전쟁 지역과 태평양 전쟁 지역에서 전쟁하다 말고 조선 땅에 와서 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하고 물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군인들이나 경찰의 행위는 공적 업무 즉 공무입니다. 공무는 반드시 법령에 따라 행해지는데 당시 위안부를 동원하라 위안부를 모집하라 이런 법령은 없었으며, 국가총동원법이 1938년도에 제정됐지만 그 당시에 총동원법에 따라 여러 부위의 사람들이 동원됐지만 위안부는 동원 대상이 아니었으며, 위안부는 그냥 인사소개업자 또는 포주의 모집 대상일 뿐이라고 못박으며, 이00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그 근거로, 초창기에는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 홀려서 따라갔다고 해놓고선 시간이 지나면서 그날 밤 자는데 일본 분이 와서 자신을 끌고 갔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또 다른 데서는 가미가제 특공대가 와서 자기를 끌고 가서 전기 고문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하였다.
군인이 할 일 없어서 시골 여인을 데리고 가서 위안부를 시키고 고문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이00는 이렇게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였으며, 국회의원 윤00은 자신의 책에 이00가 일본군에게 끌려갔다고 거짓을 말했는데 대한민국은 온통 거짓말 천국이라고 하였다.
그 유명한 기록록(?)에 보면, 친구들과 모여서 우리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가자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돈을 벌러 갔는데 무슨 일본군이며,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무슨 거짓말을 그런 식으로 하는가?라고 하며,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해야지. 군인은 민간인을 데리고 갈 수가 없으며, 절대로 민간인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김00는 양아버지가 엄마에게 40원에 팔았는데, 일본 군인이 끌고 갔다고 하지만 양아버지는 김00을 40원에 사서 평양 기생학교에 교육을 시키고 국내에서 영업을 하려고 영업 허가를 내려고 했으나 나이가 어려서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데, 김00의 이야기로는 17살인데 19살이 되어야 기생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영업할 수 없기에
양아버지는 김00을 데리고 국내에서 영업 허가를 받지 못하니까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중국으로 중국으로 가는데 떠나는 날 평양역에 김00의 어머니는 노란 스웨타를 사와서 자기 딸을 배웅했는데 근데 무슨 일본군이며,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런데 증언집에 보면
김00이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납치됐다고 했는데, 민간인을 납치하면 그건 중대 범죄 행위이므로 있을 수가 없으며, 이것도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났다고 했다.
1992년도 연말에 동경재판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때, 김00의 소장에는 베이징이 등장하지 않았고, 평양에서 맨날 며칠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트럭을 타서 북중국 철벽진에서 김00이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철벽진에서 양아버지와 헤어졌다고 소장에 기록돼어 있다고 했다.
김소장은 무슨 베이징에서 납치를 하냐?며, 그러면 납치한 범인을 잡아야지, 납치범을 잡아서 처벌을 해야지 왜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이게 바로 거짓말이라고 하였다.
또한 오늘 이야기하는 안00는 너무나 황당한데, 안00는 “어느 날 동네 앞에 모이라고 해서갔는데 저울에 달아서 55kg이 되니까 무조건 트럭에 타라고 했다”고 하는데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어딨냐며, 사람을 데리고 갈려면 만약에 군인이나 경찰이 민간인을 소집하거나 집합시키려면 반드시 법령이 있어야 하며 그 법령에 따라 문서를 교부해서 언제 어느시까지 어디로 오라고하지, 할 일이없어서 전쟁하다 말고 조선 땅에 가서 여자들을 저울에 달아서 데리고 갔다는 말은 상식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받아들이지, 이게 말이 되는 것이냐?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되는데, 신분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기 때문이며, 전쟁터에 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군사 보안 문제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신분증명서를 발급받도록 돼 있고,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는 반드시 포주와의 계약서가 있어야 하며, 그 계약은 친권자의 승낙이 있어야만 계약이 체결되는 것이지,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해서.
현지에 가서 위안부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현지 총영사관에 경찰에 가서 또다시 현지에서 위안부 영업할 수 있는 영업 허가를 또 받아야 되므로 그 당시에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매춘부는 모두 다 공창이었고 허가 사항이 없고 세금을 냈기 때문에 허가 없이는 일을 할 수 없고, 현지 경찰서 영사관 경찰서에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호적등본, 인감증명서, 친권자 승낙서, 영업 허가원, 영업인 조사서, 사진 2장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서류를 갖추어서 영업 허가를 신청해야 되고, 이 모든 서류는 국내에서 출발하기 전에 갖추어야하며 현지에서 이 중에 서류가 하나라도 미비할 경우에는 영사관 경찰서에서 귀한 시켰다고 했다.
이렇게 필요한 서류와 절차가 있는데 군인들이 여자를 납치해서 군인들을 대상으로 여자 장사를 한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냐?고 했다.
본인들은 조선의 민간인들을 납치해서 위안부로 삼았다고 하는 그 군인들은 “전쟁 범죄자”인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 후에 전범 재판소에서 반드시 처벌을 받았어야 했는데 조선의 여인을 납치해서 야물을 시켰다고 해서 처벌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위안부는 조선의 여성만 있는 게 아니며, 일본의 여성이 약 50% 정도이고 조선의 여인은 한 30%. 그 나머지 20%라고 했다. 일본의 여성이 가장 많은데 일본 여성들도 일본 군인이
일본 경찰이 납치한 거냐?고 물었다. 일본 여성들도 강제로 들어가고, 강제로 데려가서 계약을 어떻게 체결하느냐?강제로 데려가서 친권자 승낙을 어떻게 받으며, 영업 허가원서며 영업인 조사서를 어떻게 받느냐?고 했다.
김소장은 장장 30년 동안 이 위안부를 가지고 사기를 치고, 상식이 무너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지적했다.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20만 명이나 끌려갔다고, 20만 명이 끌려갔으면 한 가족을 다섯명이라 해도 100만명이 있는데 그 100만명은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그리고 전쟁 후에 그것이 전쟁 범죄였다면 왜 그들에 대해서 처벌을 하지 않고 있으며,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1990년도부터 갑자기 들고 나온 이유는 뭔가? 그리고 위안부 증언을 보면, 거의 다가 부모가 사라지는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들 그다음에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군 위안부들 두 번 여덟 번의 증언집을 보면 부모를 원망하고, 어머니를 원망하며, 엄마는 왜 그런 데 보냈냐고, 그렇게 어머니를 원망하며, 또 아버지를 원망하는데 아버지는 왜 나를 그곳에 보내서 고생시켰느냐? 그리고 아직까지 살고 있느냐? 저 아버지 덕분에 원 없이 고생하고 왔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일본군에게 끌려들어 갔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증거 하나 없다고 했다.
증거가 왜 있어야하냐면 일본군은 일본군의 행위는 공적 업무이기 때문에 모두 다 법령에 따라서 시행이 되고 그 법령에 따라서 시행될 때는 반드시 문서로 남게 돼 있으므로, 증거가 하나도 없으며, 또 위안부들의 증언을 보면 그냥 와서 끌고 갔고,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없는데 윤00과 김00은 일본군이 끌고 갔다고 하는데, 김00은 어떤 계급장이 없는 군복을 입은 남자가 우리 집에 왔다고했으며, 김00는 증언에서 엄마하고 아버지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걸 가지고 실랑이 한다고 써놨고, 그 증언에는 어디에도 일본군이 끌고 갔다고 써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윤00은 ‘25년간의 수요일’에서 일본군이 끌고 갔다고 했다가. 경찰이 끌고 갔다고 했다가 그리고 또 군복을 입은 일본 군속이 끌고 갔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일본군이 끌고 왔으면 증거를 제시하면 되고,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40명의 도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 일본군에 의해서 강제로 동원된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안00도 마찬가지로 위안부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 말하기를, 14살에, 쌀을 저울질하는 저울에다가 몸무게를 달아서 데리고 갔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증언을 보면 자기가 어디에서 생활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일본군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만16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위안부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친권자의 승낙서와 호적등본을 제출해야되기 때문이고, 호적등본은 친권자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나이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제출하게 돼 있으므로 열네살을 끌고 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현지에 가서도 나이를 속이다가 걸려서 되돌아오는 사람 많았으며, 특히나 일본군 위안소는 그 관리 감독이 엄격했기 때문에 유인 유기 납치나 또는 나이를 속이거나 친권자를 속여서는 영업 허가를 얻을 수 없는곳이기 때문에 열네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거짓말하고 그걸 여기 전시해 놓았다고하는 것은 코미디요, 쌀 저울까지 전시해 놓고 있는데 사람이 물건이냐?고 강하게 물으며, 물건인냥 저울에 달아 데리고 갔다라고 말하는것은 행정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안00은 정상적인 모집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나이가 맞지 않고, 어디에서도 생활한지도 모르기에 일본군 위안부라고 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라고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일본군 위안소의 설립 목적은 점령지 여성에 대한 납치 강간 살해와 같은 전쟁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 군인들에게 감염되는 성병을 성병으로 인해서 상실되는 전투력 상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결국은 성병 예방을 위해서 일본군의 관리 감독하에서 성병을 관리하고 인원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필수품이 콘돔인데, 일본군 위안소 규정에도 콘돔은 반드시 비치 하도록 돼 있고 반드시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안00도 이00도 본인의 증언에서 콘돔은 본 적도 없다고 했는데 일본군 위안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김소장을 말하기를, 이 여자가 여성가족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돼서 수십 년 동안 국고보조금을 받았고, 국민을 속여서 국민의 피땀어린 혈세를 포탈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불쌍한 노인, 일본군에게 끌려간 노인, 일본군에게 끌려간 위안부 일본군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거짓말하고 떠버리고 다니고 있으며, 전시를 통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전시나 출판물 영상물등 이 모든 것들이 이 위안부들에 대한 과거 불행한 생활을 했던 일본군 위안부든 아니든 간에 과거 불행한 생활을 했던 여인들에 대해서 심각한 인권유린 현상인데, 이는 이들의 과거의 불행한 생활은 그야말로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인데 이걸 증언집 8권, 인터넷에 증언집을 그대로 옮겨 싣고, 영상으로 만들고. 만화로 만들고, 조형물로 만들어서 온 세상에 “이 여자가 이 사람이 과거에 이런 일을 했다고” 온통 다 까발려버리고 서울 “남산 기억의 터”에 틀려가면 이 사람들 이름을 돌에 새겨서 수백 년 동안 전하도록 해놨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불행한 여성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인데도 불구하고 잘한다고 떠들고 다니며 위안부들의 인권 회복이고 명예회복이이라고 이따위 호소한다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란 분명히 알아야 되는데,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를 하고 돈을 받는 여성 즉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을 말하며,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관리 감독을 받으면서 위안부 생활을 한 여성이고,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위안부 피해자법 제2조 1항에 그 정의가 돼 있듯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돼 있고, 그 전제조건이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이다.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동원 대상이 아이며, 동원은 국가 공권력이 작용해서 강제성을 부여할 때 동원인것이라고 못박았다.
아울러 위안부는 포주나 모집 업자, 즉 인사 소개업자의 모집 대상이지 동원 대상 아닌것이며, 일제는 조선의 여인을 또는 일본의 여인을 강제로 끌고 갈 수가 없으며, 여인들의 납치는 기본적으로 전쟁 범죄이며, 눅 그런일을 하겠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경찰은 납치와 같은 범죄 행위를 단속하는 기관인데 만약 만약에 했다면 그거는 바로 처벌 대상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하는데 조선의 여인이든 일본의 여인이든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동원된 적이 없으며, 있으면 증거를 제시하면 되며, 구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딱잘라 말했으며, 이런 것들은 모두 다 거짓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