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중 일부는 본지와 방향이 다를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신사도 운동의 진실[2]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의해서 병을 고쳐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 여자 목사처럼 {수리수리마수리}해서 예언하고 병고치고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통 기독교 보수 개혁주의 노선에서 하는 말,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신데.}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목적은 공의로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마귀를 멸하시는데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쓰임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시는데 힘쓰는 삶입니다.
진정한 예언은 {사람의 미래를 점쳐주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하나님의 말씀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천지 창조에서부터 마지막 심판까지 모든 예언을 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보려 하지 아니하고 신비한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라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자신의 상상이고 생각입니다.
만일 정말 들렸다면 사탄마귀의 소리가 분명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뒤집어씌우려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나 자신도 1975년부터 지난 40여년을 이런 신앙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을 다했었습니다.
(7) 그러므로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단이 이야기하면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오늘날 신천지와 같은 이단에 넘어가는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8) 각 종 방언 말함
방언은 “따따따따”가 아니라. 각국 나라의 말입니다.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쓰여 지는 그 나라의 말이 성경에서 방언이라고 합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친구의 여동생이 모 교회 집사였는데 방언찬양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동생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것은 하지 말 것을 권유 했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도 인정을 했다고 하면서 듣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방언찬양, 또는 몸 찬양이라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건강했던 그는 얼마가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9) 방언 통역
방언은 외국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통역이 가능한 말로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따따따따” 등을 방언이라고 한다면 이는 분명히 사탄의 술수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대형교회 목사가 이러한 주술적인 말로 {복음}이라는 가면을 씌워서 사람들을 모으는데 성공을 했던 예가 있습니다.
그 목사는 모르기 때문에 그리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원 받기에 중요한 힘, 입니다.(호4:6/6:6)(요17:3)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는 불교인들도 압니다.
불교인들이 아는 하나님!
기독교인들은 이정도만 알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는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신 9가지 은사 외에 17가지 은사를 말씀하십니다.
롬12장6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1)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2)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3)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4)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5)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6)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7)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8)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9)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11)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2)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3)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14)환난 중에 참으며
(15)기도에 항상 힘쓰며
(16)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17)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사도-사도의 시대는 종료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세례요한 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1장13절-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교사의 직임은 참 중요합니다.
현대교회에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가르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7:3)
▶서로 돕는 것
(고후8:14)[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의 쓰임이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을 서로 도와 형편이 평균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의 용도 중에는 {구제}가 아주 중요합니다.
헌금의 용도 중에서 선교와 구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다스리는 것
교회를 평안하게 다스리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대표 기관 등에서 싸움을 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권이나 명예를 위함이라고 밖에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더 큰 은사>
(고전12:31)[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시면서 고전13장에서–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최고의 계명입니다.
이 사랑을 마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22:37절)[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 이 두 가지 계명으로 압축을 하셨습니다.
또한 이 계명을 하나로 압축하여 새 계명을 주시기를
(요13:34~35)[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시면서 최종적으로 [사랑] 하나로 압축을 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죽어야 하는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말씀보존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신비주의나 은사주의에 빠지게 되면 구원받기가 어렵게 됩니다.
천천히 마음에 새기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주제:이단/무당과 다를 바 없는 거짓 신유주의자
[성령 은사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Biblical Teaching on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성령을 빙자한 은사주의자를 비롯한, 잘못된 성령론을 교회 안에 퍼뜨리는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들은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구약에서 많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신 그대로 신약에서도 기적을 행하셨고, 지금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
라고 강변하면서, 현 세대에서 하나님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처럼 기적을 행치 않으신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무리들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나 야곱, 욥 등에게 베푸셨던 물질적 복이나,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및 다윗 등에게 베푸셨던 세상적인 성공과 명예, 꿈의 실현 등의 복,
그리고 엘리야, 엘리사, 바울 등에게 나타났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히스기야 처럼 육신의 병에서 치유 받는 복 등이 지금 우리가 속해있는 사도 시대 이후에도, 구약, 신약 시대나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며, 이런 것들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것들로, 이를 부인하는 무리는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몰아 부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가 이러한 하나님의 기적 사역의 형태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복음증거에 있는 것입니다.(행1:8)
그런데 그들의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리한 확대와 무분별한 연결, 비정상적인 유추와 어리석은 억지를 사용한, 보잘 것 없는 잡담이라는 결론을쉽게내릴수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논리 전개가 그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주의적인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사단의 계략과 술수>
[추론:성령을 빙자한 은사주의자들은 천지를 창조 하신 하나님의 살아 계셔서 역사하심을 알지 못하고 마치 종교 주의적으로 기독교를 샤마니즘화를 가중하고 있으면서 자신 스스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말 무지함 가운데 있는데도 스스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를 전도함보다도 교회 안에 있는 교인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성도가 되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한 일일 것입니다.]
발췌한 글에서도 “믿음으로만‘(요3:16)이라고 했는데
믿음으로는 구원의 문에 이르는 것이고
”거듭남으로“(요3:5)구원의 문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거듭남에 대해서 설교를 듣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이 거듭난 것인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체험이 없이는 설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요3:3~5에서 말씀하시기를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교회로 들어 온 것을 거듭난 것이 아닌가 라고 어림잡아 생각을 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요17:3)
나의 삶의 방향이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삶으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요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기도 :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동안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술적인 신앙에 빠져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셔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