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행 9:30)
*찬 송: 559장(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내가 저곳 강동의 자제 8천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왔다가 모두 전사하고 오늘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 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우직함이 배어있는 이 말은 항우가 기나긴 전쟁 가운데 장렬한 전사를 선택하고 남긴 것입니다.
비록 패장이 되어 죽는 길밖에 없으나 향수의 감정이 느껴져 먹먹한 마음이 드는 대사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생각이 남달라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사자성어도 생겨 시사상식으로 전해지고 있으니 누구나 내 고향 사랑은 이만저만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누구나 그러한 고향으로 바울이 갑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그 잘난 아들의 금의환향이 아닙니다. 상황이야 어떻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의 맘속은 복음의 열정으로 들끓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훗날을 위해 영적 숨 고르기를 하도록 바울을 인도하십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보았을 때, 바울은 죽여도 전혀 아깝지 않은 배반자였습니다. 배반자는 어디서나 한 집단의 적대세력보다 더 나쁩니다. 왜냐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기분이라 그 앙갚음은 꼭 해야만 속이 후련합니다.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이 바울의 회심을 보고 들으며 그를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을 지키려는 믿음의 형제들은 뱀처럼 지혜롭게 비껴가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바울을 그의 고향인 다소로 보내는 것입니다. 비록 수 많은 유대인들이 배신감과 충격 속에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지만 그래도 고향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통하고 정이 흐르는 가족이 있고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입니다.
어느덧 우리의 시간은 가을인가 싶은데 추석이 바로 있는 설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만에 한증 완화된 중추절이라며 들뜬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때에 먼저 하나님께 풍성한 감사를 드리고 잘 누리기를···. 아울러 고향길을 향하며 영적 본향을 그려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면서 축복합니다. 샬롬~*
(기도: 저의 인생길이 하나님의 품 안인 천국을 영적 본향으로 믿고 나가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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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설교,